중립적 태도를 지니며 유연하게 시각적 창작물을 표현하는 과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해 보는 것과 누군가가 원하는 것을 잘 표현해 내는 것, 그 가운데서 지녀야 하는 중심과 확장은 부드러우면서 동시에 강한 자립을 요구한다.
색을 (직업적) 재료로 사용하며 색의 다양한 경험과 표현을 집중적으로 쌓아온 창작자는 이번 <Soft is Hard: Silver Edition>을 통해 색상을 구성하는 빛의 스펙트럼에 존재하지 않는, 색이라기보다는 밝고 어두움을 나타내는 음영의 은색(회색)을 표현해 보고자 했다. 은빛의 시각적 작업을 염료(침투)와 안료(표면 접착 및 발색)라는 서로 다른 방식을 취해 하나의 작업에서 만난 두 창작자는 색에 대한 정적인 저항을 보여준다.
단면(2D)과 입체(3D)가 한 사물(작품) 안에서 만나 보여주는 다면적 시선은 은색 재료들로 구성된 공간 속에서 자유롭게 머물고 있다. (글. 윤라희)
은색은 색조, 명도, 채도로 이루어진 색의 구조와 다르게, 미세한 빛 입자의 반사(광도)로 표현된다. 인쇄와 같이 색을 옮겨 담는 과정에서 은색은 입자의 굵기, 잉크의 성질(유, 수성), 판법에 따라 여러 특징을 나타낸다.
<Soft is Hard: Silver Edition>은 공판 인쇄 기법인 스크린 프린트를 인쇄 매체로 하여 은색을 표현한다. 인쇄판 망사의 밀도, 잉크의 속성, 피 인쇄물의 관계를 조율하며 매끈하거나 거칠게, 얇거나 두텁게 잉크를 얹는다. 윤라희 작가의 작업이 갖는 투명함과 입체감은 은색 잉크가 얹히는 위치에 따라 더욱 다채롭고 깊은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아크릴이 갖는 약간의 불투명함은 뒷면에 인쇄된 은색의 질감을 흐릿하게 만들어 스틸 소재의 질감이 연상되기도 하며, 입체물의 상하좌우면 활용은 공간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우리는 이와 더불어 색의 밝기, 이미지와 레이어, 입체면의 구성을 통해 작업을 진행하였다. 아크릴의 흠집을 모티브로 이미지를 찾아내고 레이어를 구분하여 색의 밝기를 지정하였다. 밝은색과 어두운색 혹은 중간색을 순차적으로 구성하고 하나의 오브제 안에서 세 개의 면 혹은 네 개의 면에 색을 얹혔다.
은색으로 덮인 오브제는 각도에 따라 빛을 달리하며 잔잔하고 차가운 감정을 나타낸다. 아크릴 속에 부드럽게 번져가는 염료는 전면과 후면의 레이어와 만나 보다 거칠게, 혹은 밝고 어둡게 이면적 성질을 가지며 다양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은색의 오브제를 통해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시각적 표현을 탐구하고자 하였다. (글. S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