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환은 작가이기 전에 ‘메이커’이다. 라디오, 컴퓨터, 핸드폰 등을 분해하고 재조립해서 망가뜨리기는 것은 어린 시절 그의 주된 일과였다. 13세 때 인터넷에 처음 접속한 것을 시작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가져왔다.
최근 그는 예술의 도구로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은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 인공지능을 이용해 각기 다른 달항아리의 모델을 무한대로 생성한 뒤 이를 3D프린팅으로 구현한다. 인터넷을 처음 접속하던 시절 <백자송> 이라는 주제의 김환기 화백 25주기 특별 기념전을 접한 천영환은 달항아리로부터 컴퓨터 세상 만큼이나 깊은 인상을 전해 받았다고 한다. 어느것 하나 같지 않고 모양이 달랐던 달항아리를 처음 마주했던 그때의 느낌을 모티프로 AI가 각기 다른 달항아리의 이미지를 무한대로 생성, 생성적 적대 신경망 분석*을 통해 가장 높은 확률의 모델을 선별하여 재생가능한 친환경 소재로 3D프린팅한다.
큐레이터 파올라 안토넬리는 앞으로 예술가들의 도구는 AI가 될 것이라 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AI를 활용한 예술 작업 가운데 기술을 단지 표현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 기술 그 자체가 작품을 만드는 창조적 결정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한 경우는 많지 않아 보인다. 천영환이 AI를 활용하는 방식은 화가가 궁극의 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해 수백 번 고쳐 그리는 과정과 도공이 가장 균형있고 아름다운 자기를 빚어내기 위해 수없이 많은 물레질을 하고 가마의 조건을 달리하여 끊임없이 반복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것은 99.17005896568298% 확률로 달항아리입니다>에서 AI는 달항아리에 관한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궁극의 달항아리 이미지가 무엇인지 결정한다. 결정된 데이터 값을 통해 재생가능한 친환경 필라멘트를 재료삼아 3D 프린트가 달항아리를 제작한다. 수없이 고쳐 그리는 화가의 손길을 AI가 대신하고, 원하는 모양을 빚어내기 위한 장인의 쉴 새 없는 물레질은 3D 프린트가 대신한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항아리가 원하는 대로 빚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가 역시 직접 프린트기의 출력 온도, 각도 등 다양한 변수를 제어하며 수없이 많은 시도를 반복해야만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오브제를 달항아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과거 많은 레디메이드(Ready-made)가 그것을 작품으로 만든 작가들의 의미/해석을 바탕으로 예술로 인정받았다면, 이 작품의 작가는 천영환인가 AI인가**? 아니면 둘 다 인가?
누가 무엇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관한 관점을 전환하는 이 작업의 창작 과정은 현대 미술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AI가 점차 우리 삶과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지금, 예술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
긴 시간 왜 이 작업을 진행해왔는지 천영환 작가에게 물어본다면, 그의 대답은 무구한 역사 속의 어느 예술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미래지향적 기술인 인공지능의 보이지 않는 비가시성을 물성으로 재현하는데
‘달항아리’라는 오브제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그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천영환의 이번 작업을 통해 ‘미래를 사유하는’ 예술가의 역할뿐 아니라
(기술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사유하는 앞으로의 예술을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정지원 (노사이드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