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 그리고 우연이 빚어내는 이야기의 세계
송지현 작가의 개인전 <공허의 기억: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파편, 사금파리>는 MnJ문화복지재단이 청년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만든 첫 전시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여는 청년예술가를 국내 기획전시 공간과 매칭하고 전시 만들기의 전 과정에 걸친 협업을 지원한다.
송지현은 물질과 재료에 대한 밀도 높은 탐구와 기술, 그리고 기예의 연마라는 공예작가의 소명에 성실히 응답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배우고 익힌 것으로부터 빠져나와 ‘낯설게 보기’와 ‘낯설게 보여주기’를 시도하며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는 전방위에서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창작집단이자 그것을 담는 그릇이 비록 일견 작지만 가늠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진 팩토리2가 그간 견지해온 예술적 태도와 깊이 공명하기에 본 전시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국가는 결국 이야기 위에 만들어진다.” - 유발 하라리
한 국가뿐 아니라 세계는 어쩌면 개인의 서사가 모여 집단의 서사가 되고, 그것이 믿음이 되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당연시 받아들이고 절대 변하지 않을 것으로 여겼던 것들이 일부 지역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무너지고 재편되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그러하기에 지금의 우리에겐 작은 이야기, 개인의 서사, 집단의 서사, 믿음 간의 균열된 틈을 예술의 언어로 탐색하고자 하는 시도가 더욱 절실하다.
이번 전시는 사기그릇이 깨져 생긴 작은 조각을 칭하는 사금파리에서 출발한다. 통상적인 쓰임에서 멀어진 불규칙한 형태와 파편 도자 오브제에 시간과 우연성이 결합했을 때 만들어지는 이야기성을 주의 깊게 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의 반복과 실험을 통해 우연성을 최소화하여 ‘완성된’ 혹은 ‘완벽한’ 형태를 생산하도록 훈련받아온 공예작가의 숙련(practice) 위에 공간과 시간, 우연과 상상이라는 새로운 층위가 겹친다. 이로써 개별의 완성된 오브제라는 ‘사실의 세계’는 작가와 보는 이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의미의 세계’로 변화한다.
근대 이전의 연금술사가 철, 허브와 같은 여러 물질을 섞어 진귀한 금속을 만들고자 시도했듯이, 이번 전시 속 하나의 공예 오브제는 여러 공간과 시간의 요소를 만나고, 전시라는 하나의 무대 안에서 오브제 간의 임의의 관계를 만들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편집하고 해석하는 관람객이라는 요소까지 흡수한다. 이리하여 전시는 비로소 그저 오브제의 나열을 넘어 서사성을 가진 문학적인 위치를 획득하며, 종국에는 하나의 세계까지도 만들어내는 것이다.
<공허의 기억: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파편, 사금파리>라는 사건 또한 만들어진 개별적인 이야기가 끝없이 펼쳐지며 또 하나의 문학적인 서사의 세계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